덜 뛰고 더 읽는다..이재명표 ‘일정 다이어트’ 개시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최근 회의에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야 할 행사의 의미와 기준을 다시 정립하라”고 주문했다. 단순한 현장 방문이나 의전성 참여를 줄이고, 핵심 국정 과제에 직결되는 일정 위주로 공개·비공개 동선을 압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보고서 숙독과 정책 브리핑의 질을 높일 시간을 확보하고, 메시지의 타이밍과 무게 중심을 재배치하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 일정의 과밀도는 최근 사례에서 확인된다. 이달 1일만 해도 오전 충남 계룡대에서 국군의날 기념식을 소화한 뒤, 오후에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했다. 이어 저녁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픈AI 샘 올트먼 CEO를 접견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비공개 회의와 보고까지 합치면 숨 돌릴 틈이 없었다”며 “메시지 집중도와 정책 검토 시간이 동시에 잠식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전했다.
지시 직후 실제 일정 조정이 가시화됐다. 당초 대통령이 참석해 의미를 더할 것으로 기대됐던 다음 주 해군 잠수함 진수식은 대통령 불참으로 선회했다. 관계 부처와 공공기관은 대통령 참석을 전제로 기획했던 행사들의 필요성과 정책적 파급효과를 다시 따지는 중이다.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참석 자체가 목적이었던 관성이 꺾일 것”이라며 “정책 기여도, 사회적 파급력, 국민 체감도를 기준으로 선별하는 체계가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반응은 엇갈린다. 여권은 “속도와 양보다 깊이와 질을 택한 결정”이라며 환영 기류다. 보고서 숙독과 브리핑 고도화에 시간을 배분하면 정책 일관성과 실행력이 높아진다는 논리다. 반면 야권은 “공개 일정 축소가 민생 소통의 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역 현장 방문과 시민 청취 창구를 병행할 것을 촉구한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현장 소통을 줄이려는 것이 아니라, 효과와 전략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일정 구조조정의 성패가 ‘우선순위의 명료화’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대통령 메시지의 피크 타이밍을 설계해 핵심 정책 발표와 현장 방문을 연계해야 한다. 둘째, 부처별 브리핑 책임을 강화해 대통령 보고의 품질을 높이고, 반복 보고와 의전성 행사를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셋째, 공개 일정은 적더라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피드백 루프—현장 목소리 수집, 후속 조치 공개, 성과 점검—를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번 조정은 ‘덜 바쁘게, 더 정확하게’라는 국정 리듬을 만들기 위한 초기 진입로다. 대통령의 동선이 줄어든 만큼, 각 일정의 상징성과 메시지 밀도는 더 높아져야 한다. 동시에 소통의 창은 형태를 바꿔 유지되어야 한다. 정례 브리핑의 내실화, 온라인 타운홀, 주간 정책 노트 공개 등 대체 채널을 통해 국민과의 접점을 꾸준히 확보한다면, 일정 축소가 곧 소통 축소로 비치지 않을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의 실험이 국정 운영의 효율성과 신뢰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